[쿠키 사회] “기초생활수급비에서 하루 7000원씩 방세 내고 나면 남는 건 17만원 뿐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병원에 갈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찾아와 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박영철(가명·59)씨는 관절염과 고혈압,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자신을 ‘종합병원’이라고 표현했다. 몸이 아프니 일도 할 수 없다. 진료비가 겁나 병원에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박씨는 4일 서울 남대문로 5가 경로당에 ‘사랑의 의료봉사’ 진료소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보가 주최하고 서울시의사회와 한국병원약사회가 참여한 제860차 ‘사랑의 의료봉사’ 진료소가 차려지자 수십명의 사람들이 대기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진 비로 진료는 30분 늦은 오후 2시30분부터 시작됐지만 발걸음을 돌린 사람은 없었다.
의료봉사에 나선 의사 5명, 간호사 3명, 약사 6명, 자원봉사자 5명은 경로당 안에 내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약국 등을 차렸다. ‘움직이는 첨단 병원’ 버스에는 치과 진료소가 세워졌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나사로의 집(남대문지역상담센터) 직원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뒤 쪽방촌에 들어온 이들이 많다”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려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루 동안 진료를 받은 주민은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 등 86명이다. 주민들은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친절하게 진료를 해준 의료봉사단에게 한없이 고마워했다.
진료소를 찾은 허호순(71·여)씨는 무릎이 아파서 제대로 걷기 힘든 상태였다. 약까지 독해 몸은 퉁퉁 부었다. 허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의사들이 건네는 친절한 말 한마디, 따뜻한 미소에 병 든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되는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서울시의사회는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이면 서울시내 쪽방촌들을 찾고 있다. 또 일요일마다 서울 당산동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 진료하고 있다.
봉사에 참여했던 성영자 보령아산병원 산업의학과장은 “쪽방촌 사람들은 환경적으로 질병을 얻기 쉬운 곳에 살고 있고, 마음에도 피해의식 때문에 생긴 상처가 많다”면서 “진료를 넘어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준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